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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살이보고 - 여름의 끝에서

독일 적응기

by Laboratoire bleu 2022. 8. 2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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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글을 쓴지도 벌써 3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마주하는 시간을 내는 것이 꽤나 힘든 일이다.

이러한 힘든 일들은 항상 즉흥적으로 생각날 때 딱 써야 제 맛이 난다.
그러므로, 오늘 딱 쓰고 자기로 결심했다.

이제 8월 말이라 뮌헨의 여름은 사실상 거의 다 지나갔다.
여름 자체도 사실 34도 이상 올라가는 적도 거의 없고 평시 기온이 30도 언저리라 기후상으로는 파리나 서울보다 꽤나 쾌적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다.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비어가르텐에서 헬레스 맥주를 마시기에 딱 적당한 기온과 햇살이랄까?
썸머타임의 묘미는 9시 즈음까지 지지 않는 해라고 생각한다.
퇴근 이후에도 해를 받으면서 야외에서 노상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유럽에서의 특권이라고도 생각한다.

Schliersee

아쉽게도 협업 중인 교수가 본에 테뉴어 직을 받고 옮기셔야 하는 일이 있어서 이번 여름에는 그쪽 연구실과 이사 전 마지막 실험들을 몰아서 하느라고, 특별히 여름휴가를 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독일의 장점이 또 여기에서 하나 나올 수 있다.
하이킹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Schliersee, Zugspitze, etc...
바바리아 주는 남쪽으로 알프스 산맥을 등지고 있는 구조이다. See는 독일어로 바다, 호수 라는 뜻이다. 독일 하이킹 코스들을 찾아보다 보면 심심치 않게 see 가 붙어 있는 지명들을 볼 수 있다. Zugspitze의 경우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알프스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운 좋게도 세미나가 그곳에서 열리는 틈을 타서 산 정상 기상센터에서 3일을 묵는 기회도 가져볼 수 있었다.
하이킹을 하면서 마시는 오스트리아 음료 Almdudler 를 한잔 딱 마시다 보면 이게 여름의 청량함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Zugspitze

꽤나 건전한 삶을 살아가는 요즘이다.
하이킹의 청량함 같은 걸 말하는 날이 올 줄이야...

퇴근하고 돌아오면 저녁 준비하랴, 저녁 먹고 나면 쉬면서 지인들과 디스코드에서 잡담을 나누거나, 침대에 누워서 영상을 보다 보면 잘 시간이 되어있다.
퇴근하면 독일어 공부도 좀 하고, 못 읽은 논문도 좀 읽어보고, 큐티도 하고....
짧은 하루 마무리 시간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아주 J스러운 계획들도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점차 인지하는 것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은 한정되어있음을 느낀다.
워라밸을 강하게 챙기려는 사람들을 보면, 역시 삶을 즐길 줄 아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왔었다.
요즘은 저렇게라도 해야 평일 일과 중에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싶다.

그러한 이유로(?) 나도 집에 도착하고나서부터는 머리를 식히려는 내 안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면서 최대한 편안한 무드에 있으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내 체력과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선에서만 무드 조성을 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항상 기를 받는 "나"
이제 3달 뒤면 이 곳에 온지도 1년째가 된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직장 동료들, 교회 한인들 속에 이제 스며들었다.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랬으면 한다.

동료들과의 마찰, 달성 목표의 버거움 등등
일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보는 중이다. 3년 정도 더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 자신이 온전하게 서는 모습도 가끔 거울 속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 사진은 요새 Mensa (구내식당)을 끊고, 점심을 사 먹으러 다니는 Wiener Platz라는 곳이다. 마켓이나 bakery에서 샌드위치와 버거를 사서 마켓부터 병원까지 걸어오며 햇빛을 쬐다보면 우울감이 가시는 느낌도 든다.
안타깝게도 10월에 한국 갔다가 돌아오면, 다시 우중충 비 후두두 날씨가 나를 맞이할 테니... 지금이라도 양껏 여름의 채취를 좀 더 즐기고 싶다....!!

+. 9월 19일 자 비행기를 끊었다.
3주간 쉴 생각이다. 독일에 있다 보면 마음이 아픈 게 가족이 상을 당해도 선뜻 바로 가기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죄를 짓는 기분이 항상 든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외삼촌을 뵙고 직접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할 생각이다.

Wiener Pla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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